바야흐로 1년 점 요맘때 쯤,
딱 떨어진 담배를 사러간 것이 시작이었다.
담배를 파는 가장 가까운 곳은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신양다운타운의 (그때는) 유일했던 편의점.
담배를 필까 말까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바람도 쐴 겸 길을 나섰는데
마을 길을 벗어나 이찬서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갑자기 청양 운곡면의 할머니가 지키는 점방같은 담배만 팔던 담뱃가게가 생각 났다.
좌회전 대신 우회전으로 가는 길.
예산과 청양의 경계를 지나면 양쪽으로 시야가 트이는 논을 만날 수 있다.
예산 신양면만해도 축산 허가가 많이 나서 그런지 논 중간중간 축사가 많은 편인데,
청양의 논은 그냥 그대로 벌판인 곳이 많아 시야가 좀더 안정이 된다고 해야 하나?
가게를 찾아 드라이브 삼아 가고 있는데, 겨울논에서 식사를 하던 오리 무리를 발견했다.
얼핏 봐도 수가 꽤 많았다. 담배를 사러 가는 중엔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들러봐야지...'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다.
보통 던힐을 피는데, 국산담배만 팔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디스 한갑과 오랫만에 보는 도라지 한 갑을 사갖고 돌아오는 길.
무리가 심상치 않게 는 느낌이다.
길 옆에 차를 대고 논 쪽으로 걸어갔더니 그 수가 장난 아니게 많았다.
담배 사러 간 사이에 저녁식사를 하러 온 모양새다.
바글바글거리며 식사를 하는데 환공포증이 슬쩍 밀려 왔다 싶었는데,,,
갑자기 수천수만 마리의 오리떼가 일제히 식사를 멈추고 하늘로 날기 시작했다.
푸드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몇초만에 창공으로 날아간 새들은 저멀리까지 가서 한바퀴 돌더니
어느새 갑자기 내 머리 위를 날아갔다.
순간 넋이 나간 느낌이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진풍경이었는데 그 스펙터클한 장관에도 홀렸지만,
머리위로 날아갈 때 생기는 휘파람을 부는듯한 날개짓소리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2~3분 정도를 논위에서 놀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다음날에도 볼 수 있을까?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세상 모든 일이 머릿 속에서 사라졌다.
오로지 다음날 이곳에 기필코 오리라는 생각밖에 들진 않았다.
괜히 들뜨고 세상의 모든 것을 허용할 수 있는 담대하고 넓은 마음이 된 것만 같았고
괜스레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 감정 뭐죠? 이게 연애기분같은 걸까?
다음날엔 좀더 일찍 출발해서 논가운데에서 죽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보다 많은 개체가 온듯하다. 여기저기서 저녁을 먹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리로 휙, 저리로 휙~ 날아다니며 밤하늘 은하수처럼 자유럽게 날아 다녔다.
서편에는 해가, 동편에는 낮달이 있었다.
진심 신비롭고 마법같은 순간이어서 옆에서 블랙핑크 제니가 말을 걸어도 무시했을 것 같은 그 느낌,
호로롱 호로롱을 마음껏 느끼며 심장의비트는 터질 것처럼 고조되었다.
해가 질 때쯤 마법처럼 사라졌는데, 가창오리떼 만큼이나 신기한 것이 사람들이었다.
나만 신난 것 같고 나만 신기한 것 같은 이 느낌 뭐지?
지나가는 차 안에서 분명히 이 광경을 봤을텐데 내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근처에 사시는 분들은 매일 보는 풍경일까?
이 시간에 줄지어 관람할 법도 한데 이 넓은 곳에 왜때문에 나혼자인 느낌이 드는거지?
그 다음날은 지인들과 금강의 공주보네 들렀다. 낮동안에는 금강 수면 위에 징그러울만치 빼곡히 앉아 쉬는 오리들을 보고 해질무렵 일제히 떠올라 마치 센과치히로의 모험에 나오는 하쿠처럼 길게 자리르 옮기는 가창오리떼를 봤다.
그 수가 엄청났고 그역시 장관이었으나 넓은 강을 가로질러 가서 육안으로는 그 생생함이 와닿지 않았다.
넘나 기대했었던 그래든 캐니언에 처음 갔을 떄의 느낌이랄까?
분명 그 안에 있는데도 너무 먼 느낌. 마치 인화된 벽지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역시도 비현실적이긴 했지만 현실인데도 영화같은 느낌이 더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다시 한번 친구를 불러 청양 운곡면으로 가 보았다.
그 많던 오리가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
아! 가창오리 군무를 보는 건 살짝 운빨이구나.
담배의 요정이 인도한 신비로운 길을 다녀온거구나.....
여기까지가 작년의 가창오리떼를 만나 이야기.
이 이야기를 겨울에 몇번 털었던 적이 있다.
연말이기도 했고 예산에 이사온지 일면이 되기도 했고 예산 저고리가에 자주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순간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 무용담처럼 늘어 놓게 되었다.
사실, 반의반의 반도 표현할 수 없는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어찌저찌 친구들을 꼭 초대하겠노라 새끼손가락을 걸게 되었다.
이 뻐렁침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니 다들 마우스 내팽개 치고 사표라도 쓰고 오라고
농담을 진하게 던지며 세상 대단한 일인양 유난을 떨었다.
그 유난의 결과
2월을 맞이하는 마음이 불안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이 언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마음에 불안이 쌓여만 갔다.
혹시,,, 올해는 안 오는 거 아냐? 작년엔 수년만에 수십만 개체가 늘었다던데 어쩌다 보니 생긴 우연 아닐까?
노파심은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렸지만, 매일매일 꼬박꼬박 해지기 30분~1시간 전에는
이곳저곳 탐조활동을 하고 다녔다.
실제로 마우스를 팽개치고 올리 만무하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올 누군가를 위해
매일매일 지구에 탄소발자국을 남기며 헛수고를 하고 다녔다.
근방에 사는 생태안내자의 정보를 얻고 페북에서 지인들의 포스팅을 확인하고 예산토박이의 아내를 받아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번번히 허탕이었다.
그러던 중 예당저수지에서 소소한 가창오리떼를 만나고 물닭을, 청둥오리를 만나고 고니도 보고 황새를 만났다.
슬슬 입질이 왔다.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단톡방을 열었다.
단톡방 방제는 <뻐렁침 주의보>.
작년을 돌이켜 생각할 때 가장 피크일 것같은 주말에 약속했던 친구들을 불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