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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시간들

[산] 2021 베오베 작업물

🏆 5위. 매거진 THE
작업하면서 가장 하기 싫고 어려운 작업은 잡지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안 신비한 동물사전을 만들고 난 후에 약간 텍스트가 많은 작업에 욕심이 생겼달까. 완성도 있는 잡지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마침 좋아하는 친구들의 콘텐츠이기도 해서 일을 맡게 되었다. 텍스트나 이미지 퀄리티가 높아서 별 어려움 없이 수월하게 작업했다! 인쇄가 아쉽긴 하지만(역시 감리의 중요성ㅠㅠ), 그래도 그동안의 잡지 중에서 가장 괜찮은 결과물이 아닐까 싶어서.

@요일 인스타 퍼옴


🏆 4위. 천안시민사회20주년 표지작업

아무리 시간과 돈을 많이 들여도 개똥같은 결과가 나올 때가 있다. 그게 일의 90%를 차지한다고 본다, 반대로 당장 '내일까지 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돈 안되는 일인데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때도 있다. 한창 바쁜 일들 틈에서 책자의 표지만 만들고 제본해야하는 일이었다. 대충 만드는 '자료집의 표본'처럼 만들 수 있었으나... 바쁜 와중에 쓸데없이 꽂혀서 만들게 된 작업물.
나름대로 천안시민사회에 가진 애정도 있고, 무려 20주년이라는데 반짝이는 축하를 담고 싶었다. 타이포의 안정감이 떨어지긴하지만 하루에 만든거 치곤 만족스러운 편. 이 타이포를 다듬고 스토리를 입혀서 브랜드이미지로 쓰면 어떨까, 생각은 해보았지만 자료집과 현수막으로만 남았다.


🏆 3위. 천안청년SE투어 & 천안시민사회20주년 표지작업


(왼쪽)클립아트코리아를 쓰면서 어떻게 하면 뻔하지 않게 보일까를 고민했던 한 해였다.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클립아트 사이트를 당연히 이용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르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달까. 요 작업은 그나마 클립아트코리아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청년을 대상으로 한 작업물은 위트있고 눈에 띄어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진한 톤으로 배색을 쓰고, 사업의 내용을 드러내는 역동적인 캐릭터들을 골라 배치했다. 제안할 때 조마조마했지만 맡겨주실 것 같은 너낌(?)이 있어서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반대로, 어떻게 하면 '클립아트를 사용하지 않고 작업을 해볼 수 있을까'도 고민했다. 마침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때 제안을 해본 디자인이었다. 제목과 주최 기관에서 온 몸으로 주장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초록색 광장이 떠올랐다. 내 수준에서 복잡한 그래픽을 담거나 유행을 따라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단순하되 유치해보이지 않도록 디자인 요소들을 사용했다.
사과나무에서 다시 일하게 되면서 디자인에 재미를 느꼈다고 느낀 건 저 두가지 고민 때문이다. 지금까지하던 관성과 밥벌이로서 디자인에서 멀어지기 위해 '어떻게 하면 기존에 내가 하던 방식과 다르게' 접근할까'가 올 해의 나의 숙제였다. 그 고민을 담은 작업물 두 개.

그나저나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제 마음대로해볼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들이 주변에 몇 있다. 그렇게 관계를 만드려고 하는 편이기도 하고.. 아무튼 다 그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


🏆 2위. 그림일기 엽서북


이건 99%의 원고의 완성도와 1%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작업물. 올 해의 인물(소산어워드)인 연꽃님의 개인적인 그림들을 작업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고. 내가 별로 공을 들이지 않고도 이런 자랑할만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화려하지 않게, 덤덤하게 쓰인 이 일기들이 덧나지 않도록 차분한 색을 유지하는 것을 디자인 방향으로 잡았다.
디자인은 중요한 포장지이지만, 내용과 재료들이 거의 전부라는 것. 그걸 그대로 드러낼 수 있도록만 작업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된 작업물.(무엇보다 딱 두번밖에 수정안했다 연꽃님 체고)


🏆 1위. 안 신비한 동물사전

이건 결코 잘해서 1위를 주는 것이 아니다. 한 해, 아니 내가 디자인 일을 한 시간들을 통틀어서 가장 '아쉬운' 작업물이기 때문이다. 그건 다르게 말하면 가장 애정을 가진 작업이었다는 말.
처음 책 의뢰를 받고, 카카포를 만들고, 책 디자인까지 하게 되었을 때. '내가 이것까지 어떻게 다해?' 라는 원망을 많이 하게 되었다. 자신이 없기도 했고 '잘'해야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당연히 내가 하지 않아야한다고 여겼다. 책임을 피하기 위함도 있고, 날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디자인까지 맡게 되었고, 좌절과 속쓰림과 실패와 벌거벗음을 느끼면서, 가장 많은 배움을 겪게 해준 작업이었다.
점수를 주자면 40점 정도. 그렇다고 해서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여전히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팀에서 선택하고 제시한 방향대로 일했고 내부의 만족도가 높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이 주어진다면 내용을 조금 더 충분히 이해하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책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처음 '편집디자이너가 되었구나' 라는 느낌을 가졌다. 예전엔 보고서나 책자 작업을 할 때 도대체 '띄어쓰기 한 칸' 가지고 왜 이렇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타고나길 세심하지 않았고, 그게 왜 중요한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책 작업을 하면서 그런 작업들은 '룰' 자체였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반복되고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게 완성도를 높이고 신뢰를 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무리하며

여튼. 올해는 디자인노동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즐겁게 작업을 했던 한 해였다. 고민을 많이 했고, 고민할 만큼의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진 덕이라고 생각한다. 사과나무의 놈팽이제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랄까. 여튼 고민을 시작했으니 내년엔 조금 더 잘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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