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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저고리가 정원이야기] 뻔한 실패를 온몸으로 겪겠다는 다짐

 

지난 겨울 이사온 집.
시골의 많은 집들이 비슷하겠지만 마당 있다는 점이 참 매혹적이었다. 
잠에서 깨고 창을 열면 보이는 풍경들이 기분 좋아지는 낮은 언덕에 있는 마당이어서 계절마다 바뀔 정원의 모습을 상상하며 맘이 설렜다.
시골로 이사 왔다니까 열 중 여덟 아홉은 텃밭은 있냐고, 텃밭을 가꿀거냐고 물어왔다. 바지런히 살피고 가꾸어야 할 텃밭을 생각하니 도저히 감당이 되질 않었다. 아니 그보다는 농사를 지어 나오는 수확물도 물론 좋지만 그저 바라만 봐도 좋아지는 풍경을 택했달까? 철마다 바뀔 꽃들의 레이어를 생각하며 봄이 오길 기다렸다. 언 땅이 녹고... 땅을 뚫고 나온 수선화 싹을 바라보며, '곧, 수선화가 피겠지...'라는 생각으로 손을 꼽으며 하루하루를 보낸 기억이 난다.

막상 봄을 맞이하니 어떻게 정원을 가꾸어야 할지 막막했다. 기존에 자라던 식물들이 점점 무성해지는데 그대로 두어야 할지 새롭게 원하는 식물들을 심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일단은 이사 오기 전 살던, 지금은 철거가 진행 중인 천안 주공4단지아파트에서 식물들을 데려 오기로 했다. 앞 정원에는 상사화 구근, 명자나무를 심고 뒷정원에는 이끼를 퍼다 날랐다.
주공4단지는 30년이 넘은 고령아파트인데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살던 곳이다. 높고 낮은 나무의 종류는 수없이 많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질만큼 키도 크고 울창해져 최근에 멋지게 꾸미고 조성한 공원보다도 더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모습의 식물들 천지였다. 그런 이유로 아파트 주변의 식물들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다. 집으로 데려온 식물은 다행히 아직까지 죽지 않고 제법 잘 자라고 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가져운 식물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이사온 곳에서 사귄 이웃이 여러 꽃 묘종을 퍼 준다. 손사래를 쳐도 담뿍 담아 주시는 손길을 외면 할 수 없어 주는 대로 심다 보니 어느새 식물들이 집 주변 곳곳에 터를 잡고 눌러 앉았다. 게다가 출퇴근 길을 지나치며 충동적으로 구매한 식물까지... 계획없이 꾸역꾸역 들여다 놓은 식물들로 마당이 온통 꽉찬 느낌이다.

이미 꽉 찬 정원을 보며 '마음에 드는 식물을 굳이 앞마당에 심어야만 직성이 풀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산책해서 뒷산을 오르면 각양각색의 풀과 나무와 꽃들로 가득하고 마음씀 넉넉한 이웃 주민들의 소박하고 정갈한 정원에도 철따라 색색꽃을 피우고 친근한 이웃집 가는 길도 꽃이 지천이다.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면 개울따라 자라는 습지 생물들과 예쁜 가로수와 농작물이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배경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주변에 넘쳐나는 것들을 꼭 내 울타리에 가둘 필요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의 거창한 포부와는 다르게 작은 다짐의 정원을 가꾸기로 했다.

'생명을 가진 식물을 데려오는데 신중을 기하자. 무턱대고 심진 말자.'

그랬다. 어린 시절의 꼬꼬마 나는 식물, 그중에서도 마당에 피는 꽃을 좋아해서 꽃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였다. 꽃의 이름을 외우는 건 기본이고 떡잎이 날 때 그 식물이 어떻게 자랄지 상상도 하며 온갖 풀이름, 꽃이 피는 시기를 기억하고 씨가 맺히면 품종별로 받아 두어 종이에 곱게 싸서 서랍에 두고 적절한 시기에 파종을 했다. 아무도 인정해주진 않았지만, 내가 심은 씨앗이 싹트고 자라는 과정이 신기해 매일매일 관찰하고 식물들을 구별할 줄 알게 되고 이름을 기억하다보니 그 행위기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갔다. 

'가성비'라는 말이 있다. 가격 대 성능비. 조금 함정같은 말. 성능 좋은 물품을 싸게 구입하면 현명한 소비를 했다는 생각에 좋은 일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내 노동력을 헐값에 갖다 바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 그리고 잉여제품을 양산해 과잉생산으로 이어지고 책임지지 못할 쓰레기로 만드는 일. 그래서 조금은 위험한 말.  
정원을 생각하며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 꼬꼬마의 내가 일깨워 준 감각은 '시성비'다. 시간 대 성능비. 오랫동안 관찰하고 몸으로 겪고 느껴서 기억의 아카이빙을 만드는 일. 거듭된 실패에도 다음을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모험해 보는 일. 구별할 줄 알고 목록화 하고 범주를 정하며 뜻하지 않은 상황에 닥쳤을 때 대응하는 법을 익히는 일. 시간이 드는 일이다. 마음이 앞서 그 시간을 오롯이 견디지 않고 보내면 제대로 살피고 가꿀 수 없다.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정보가 빼곡히 들어 있는 곳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대라 예정된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겪으며 알아가는 과정의 기쁨이 그냥 휘발되는 느낌이 든다. 태어나고 자라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생명의 순환과정을 조바심 없이 기다리며 그 과정을 즐기는 정원의 삶을 꿈꿔 본다.
여전히 나 스스로는 '식물의 생장주기 중 꽃이 피는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닐까?'라는 반성 안에서.

그래서, 일단은 거듭된 실패의 시기를 5년으로 잡았다. 식물을 구별할 줄 알고 생장조건을 살피며 잡초와 정원꽃에 구분을 두지 않고도 손길 닿은 만큼의 예쁨이 묻어나는 곳. 그래서 바라보는 마음이 편할 곳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예쁨만을 위해 온갖 예쁜 것들만의 경연장이 되지 않는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 본다.
귀찮아서 막기르는 거 아니냐는 말, 그 말도 맞다. 정원 가꾸는 일이 (아직은) 삶의 전부가 아니기에 스스로 할 수 있는 한계를 찾고 서툼과 실패가 잦아 들고 생활근육이 생겨 할 수 있는 지점이 늘 때까지 천천히. 욕심내지 않는 바지런을 떨어 봐야지.

정원이 생겨 좋은 건 나만이 아니라 더더더 행복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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