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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산]결국 마감을 넘겨버린 마감 이야기

장마 사이, 비가 마침 오지 않아 자전거를 끌고 동네 강변으로 나갔다. 나간 김에 안장이나 바꾸려고 자전거포에 들렀는데 주인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30분 후에나 온다고 하여 그냥 돌아왔다. 다시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보를 막아두었는지 물이 말라 수심이 얕아진 강 곳곳에 작은 섬들이 생겼다. 바닥이 드러난 강에서 사냥연습이라도 하듯 작은 새들이 모여 있다. 그 풍경에 멈췄다 달렸다 하며 반대편 강변까지 달렸다. 비가 올락 말락 하는 날씨에도 틈을 내어 산책하는 사람들 무리가 여럿 있었다. 빗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질 때마다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장마의 짧은 휴강 상태를 즐기고, 여름새는 장마 전 얕은 수심을 노리고, 자전거포 주인은 가차 없이 저녁 끼니를 챙기는. 일상의 빈틈들을 빼곡하게 지키는 풍경들이 좋았다.

그리고 역시, 빈틈없는 나는 마감기한을 꽉 채워 일을 시작했다. 도서관에 갔다가, 책방에 들렀다, 자전거를 타다, 갑자기 들어온 친구의 일을 마무리하다, 와인을 마시다, 안주를 만들다가, 고양이 밥을 챙겨주다, 빨대를 널다가. 이제는 더이상 피할 곳이 없어서 마감을 시작한다. 마감을 오래 남겨둔 채로 일을 끝마치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은 묘한 죄책감이 생긴다. 일의 마무리와 마감 일정 사이에 무한한 잠재력이 숨어있다는 듯이, 끝에 가까워질수록 마치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태도와 믿음으로 끝끝내 마감기한을 가득 채워서 일을 끝낸다.

어려서부터 가장 먼저 배운 삶의 지혜는 역시나 미루기였다. ‘방임을 육아 방식으로 두었던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할 수만 있다면 실수를 걸리지 않는 것을 생존수단으로 삼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최대한 미루고 들키지 않는 것을 숙련했다. 그런 결과로 배운 태도는 실수하면 먼저 사과하기, 크게 사과하기, 최대한 낮춰서 사과하기였는데, 아무튼 나 자신 따위를 내세우지 않으면 정말로 어렵지 않은 기술이었다. 내 노력이야 어찌 되었든 성과를 작게 말하고, 어쩌다 걸린 것으로 대하다 보면 무엇이든 준최선을 다한 채로 그러거나 말거나 하며, 애매한 만족으로 살게 된다.

 그러나 일하는 삶에선 미루기’의 지혜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이 더 많이 생겼다. 하나는 클라이언트가 졸라 무서울 때이고, 두 번째는 정말 마감해야 할 행사 등을 닥치고 있을 때였다. 두 번째는 어떻게든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라 결과물과 관계없이 서로 만족하지 못한 채로 일이 마무리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일을 해도 하나도 뿌듯하지 않고, 고여있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꽤 오래 그런 방식으로 일해왔다.

 다른 방식으로 생존해야겠다고 느낀 것은 첫 번째 경우를 겪었을 때다. 결과물과 마감 일정 사이의 잠재력이고 나발이고 정말 중한 것은 나에게 일을 맡긴 사람에게 약속한 일정을 지키는 것이라는걸, 정말 어리석게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몇 번의 사건을 겪고(대체로 혼쭐) 나서야 나는 그나마 전보다 마감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이상한거는 그러면서야 비로소 이 일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한거다. 미루는 인간형이 마감을 지키면서야 최선의 결과물은 잠재력이 아니라 시간을 지키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아주아주 늦게 배우게 된 거다. 지금은 전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미룰 수 있는 일은 미루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서로의 저녁 시간을 배려하고, 틈을 내어 산책하는 일. 밥을 잘 차려먹고 좋아하는 책을 단 한 줄이라도 읽는 일. 일로 꽉 차지 않은 일상이 있어야만 미루기의 기술이 먹혀들어가는거다. 뭐 아닐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