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이 남은 오늘, 제법 괜찮은 날이었다고 생각할 만한 하루였다.
딱 한가지만 빼면,,,
그 딱 한가지는 바로 지금 글의 마감. 마감에 관한 글을 써야 하는데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감은 곧잘 일을 시킨다고 해서 “마감이 일 다 했다”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이 마감은 마감이 결과물 대신 낳은 마감이다. 마감이 한 차례 미뤄진 마감. 그러니 ‘마감 역시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는 말도 맞는 듯하다.
마감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시절이 있다. 생각하면 단전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빡침으로 각인된 날들. 빛나는 청춘의 시기를 마감에다 모조리 상납하고 수명을 끌어다 써 건강한 삶과 작별을 고했던 때. 지역신문사 노동자로 일하던 때다.
당시 일했던 직장은 주간발행 지역신문을 만들던 곳. 그러니까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마감이 있다. 엉망인 시스템을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라 생각해서 매주 목요일, 금요일은 밤샘을 하고 토요일 필름출력과 판교정, 인쇄를 위해 대전으로 가야 했다. 신문이 인쇄되면 기다렸다가 인쇄물을 실어 오고 토요일 아침에 퇴근했다가 오후에 다시 출근해서 발송봉투에 신문을 넣어 월요일 우편발송을 위한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목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저녁시간까지의 풀근무에 다들 몸이 축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일년이 가고 이년이 가고 삼년이 갔다. 중간에 한 번 퇴사하고 다시 같은 일터로 들어갔는데 일주일에 한번 신문을 만들며 보름에 한번 꼴로 광고성 잡지를 만들었다. 마감이 돌아오는 시간이 더 잦아졌고 할 일은 세 배쯤 늘어났다. 딱 1년만 잡겠다며 ‘삼고초려’라는 말로 꼬셨던 사장님의 말을 거절하지 못한 순간 지구 반대편까지 꺼지는 싱크홀에 내디뎠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
정말 이상한 직장임에도 불구하고 왜 직장을 그만두지 못했는지 꾸역꾸역 울과 분을 참아가며 다녔어야 했는지 과거의 나를 찾아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고 그정도의 힘듦은 힘든 축에 속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고 삶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도 느꼈고 지역신문을 발행하는 일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안쓰럽기도 했고 가난이 주는 묘한 연대감에 끈끈한 수렁에서 빠져나오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많은 어이 없는 일들이 많아서 웹드라마 <좋좋소> 작가를 찾아가서 에피를 투척해 드리고 싶은 심정이랄까...
여튼 어떤 빨간날보다 더욱 중요한 마감이 있기에 3년동안 휴일에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명절에는 쉬었지만, 크리스마스나 신년에는 직장에서 밤을 샜던 기억이 난다. 맹렬히 빨리 찾아오는 일주일이라는 주기도 무서웠지만, 마감이 싫었던 근본 원인은 우리 다음 공정에 있는 사람을 괴롭혀야 한다는 거다. 새벽에 전화를 해서 사람을 깨워 재촉하며 일을 부탁해야 한다. 필름이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자리, 인쇄교정지를 살피며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던 자리는 실은 가시방석같은 자리다. 출력소 노동자와 인쇄 노동자의 삶까지도 갉아 먹는 마감의 연쇄작용. 시간갑질.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걸까? 돌이켜 보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구에게 미안할 정도의 쓰레기를 만드는 일의 톱니바퀴었을 뿐임을.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도 세상은 잘만 돌아갈, 차라리 더빨리 망했어야 세상에게 무해할, 그런 것을 만들고 있었다는 생각에....
물론 좋은 일도 즐거운 추억도 있지만 흑역사 속의 잔잔바리 선물같은 것, 지옥의 유황불에서도 가부좌를 틀고 수련을 하면 개뿔과 같은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는 것 정도랄까?
그래서 난 마감없는 세상에서 살 줄 알았는데 마감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어느 순간 마감이 주는 슈퍼파워를 찾아 헤매곤 한다.
... 시간을 때우자. 마감이 향하는 길로 좀더 응집되도록. 마음은 쫄리지만, 마감에 다가갈수록 효율은 등비수열처럼 늘어날테니 그때까지 최대한 개겨 보자. 쓸데없는 SNS로도 때워 보고 시시콜콜한 가십기사를 클릭해가며 킬킬대 보자. 비로소 이 때다 싶을 때, 그때가 마우스를 들고 미친 듯이 폭풍클릭을 할 때다! 마감은 채찍질을 하고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며 엉켜있는 줄로만 알았던 실타래가 마법처럼 풀린다. 면이 채워지고 드디어 뭔가 나와있다. 빼꼼, 세상에 윙크를 한다. 마감이 또 한 건 했다....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지다보니 어떻게하면 좀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을까? 궁리를 한다. 중간고사를 앞둔 학생마냥 괜히 책상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정주해 하다만 드라마 생각이 간절해지고 읽지도 않을 책을 들추거나 뜬금없이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마감이 차곡차곡 슈퍼파워 에너지를 응축해주길 바라며...
꾸준히 흔들림 없이 차곡차곡 쌓아 일하는 사람이 존경스럽다. 마감이 일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한 하는 그 순간까지 삐대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는 알고 있다. 마감은 마술이 아니며 언젠가는 해야하는 약속을 그어놓은 선일 뿐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처럼 믿는다. 마감이 주는 에너지를. 또한 마감이 정해주는 선이 없다면 아무 시도도 하지 않을런지도 모르고 무한대로 확장해도 더 잘 할 수 없는 능력을 시간의 한계로 가리는 효과도 있다.
또한 끝도 없는 수정의 개미지옥에서 비로소 탈출할 수 있다는 특강점이 있다. 수정의 개미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오! 마이 라인!
마감은 영어로는 데드라인. 그렇게 무시무시한 존재. 생과사의 경계라고 할만큼이나 또렷한 선. 어쩌면 전쟁터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 그래서 조금씩 수명을 떼어다 조공하는 일. 하지만 잠재된 능력을 이끌어주는 기특한 녀석. 그래서 궁금해졌다.
'그 선 지켜야 하나요?'
마감은 결국 약속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상대와 나의 약속. 스스로와 하는 약속. 사회와 하는 약속. 약속은 법칙과는 다르게 유연할 수 있기에 과정과도 같다. 대부분은 지켜야 하지만 파기할 수도 달라질 수도 있다. 선이 그어져 생기는 경계가 또렷하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그래서 합의가 중요하고 소통이 중요해진다. 연루된 사람이나 상황이 많을수록 새로운 합의에 의해 만들어지는 약속이 어려운 만큼 지켜야 할 선은 분명해진다. 하지만 약속이 법칙처럼 되어버리면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로한 작업에 좋지 않은 영양을 미칠 때도 많다. 어떻게 선을 정하고 또 어떻게 선을 넘나들 수 있는지. 마감을 정하고 마감을 어기고 마감을 새롭게 정하며 뭣이 중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마감은 차라리 없는게 세상에 무해함을.
(하지만 난 여전히 마감의 노예. 다음 생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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