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회사까지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르면 딱 한시간.
처음엔 그 길 따라 출퇴근을 하면서도 마냥 좋았다.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가 아닌 저수지 두 곳을 지나고 옆으론 논도 많아 시야가 확 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간 중간 큰 도로를 타고 갈 때마다 좀더 좁은 도로, 천변길을 따라가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 오는 차량이 있으면 피하기 곤란한 단점도 있지만, 대부분 오가는 차량이 없어 한적하고 양옆으로 풀들이 자라고 있어 계절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천변의 여러 생명체들을 볼수 있어 좋았다.
무심코 저지른 일탈이 이제 정코스가 되어 출퇴근 시간이 5분, 10분 차츰 차츰 늦춰졌다. '10분 정도 늦게 가면 어때?, 좀더 일찍 출발하면 되지 뭐' 라고 생각했던 코스가 비가 오고 하천에 물이 제법 흐르며 훨씬더 늦춰지게 되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왠지 괜찮은 풍경엔 내려서 직접 물속을 걷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깊은 곳도 있고 가까이 봐서 더 좋은 곳도 있고 괜히 내렸다 싶은 곳도 있지만, 차곡차곡 내 취향의 장소가 생기고 그곳에 잠시라도 머물고 싶어 시간이 지체 된다.
그래서 오늘은 무려 예상보다 40분 지각.
가슴장화를 신고(입고? 착용하고?) 물 속을 걷다보니 물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도끼자루 썪는 줄도 모르고 물속을 헤집고 다녔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초등학교 때 추억.
농촌이라고 하기엔 안그래도 초록이 부족한 동네에 삼삼오오 공장이 들어섰다. 도랑과 개천의 맑은 물엔 검은 슬러지가 쌓이고 악취가 났다. 한번은 친구 동생을 맡아 돌보고 있었는데 그 썩은 물을 건너야 했다. 쪼꼬만 애가 더 쪼꼬만 애를 업고 징검다리를 건너다 그만 홀라당 빠져서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쓰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 왔던 기억.
버스로 몇 정거장 떨어진 학교 근처만 해도 개천엔 맑은 물이 흘러 온갖 물고기들이 살았는데, 우리동네는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드넓은 바다도 좋고 웅장한 강도 좋지만, 물장구 치고 뛰어들 수 있는 정도의 물이 있는 개천이나 도랑을 좋아하는 건 아마도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하굣길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집방향과 반대편 친구네 집 근처 도랑에서 농땡이를 피우며 깔깔댔던 순간이 그리웠달까? 하천을 따라 가는 길은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이고 매일같이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당분간은 출/퇴근 시간을 네비가 안내해주는 시간에 30분을 보태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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