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점심약속을 가는 길,
조금 일찍 출발해서 천변 길로 들어섰다.
여름내 꽃길이었던 그 길이 갈대숲으로 바뀌고 오후햇살에 반짝 오리가 둥둥 떠다닌다.
그래, 조금만 더 가면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 곳,
그곳의 느티나무는 얼마나 물이 들었을까? 은행나무는 제법 노란빛을 띠고 있겠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그 길의 한 가운데에서
너무 어린 고라니의 로드킬을 목격했다.
이차선도 아니고 차 한대 겨우 지난만한 도로폭의 천변길에서
아무런 준비없이 나타난 로드킬에 당혹감이 들었다.
큰도로를 지나다가 심심찮게 만나는 로드킬을 볼 때도 움찔움찔 했지만
차를 세울 수는 없어 지나치거나 피하거나하며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막다른 길처럼 느껴지는 이곳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발견한 곳에서 우선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고민을 좀 했다.
후진해서 갈 수 있을까? 도저히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려웠다.
가끔 작은 새의 시체를 묻어주거나 약식꽃장례를 행한 적은 있지만,
좀더 큰 개체인 포유류의 얼핏봐도 너무 어린 새끼 생명체의 사체를 옮긴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차에서 내려 가까이 가 보았다.
파리떼들이 윙윙거리고 있는 그 새끼고라니는 생각보다도 너무 작았다.
더 두려워졌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당분간은 이 천변을 다닐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물드는 나무도, 갈대숲도 피하며 씽씽 달리는 도로로 운전하며 이 순간을 지옥처럼 기억하겠지 싶었다.
용기를 내어 차 안을 살폈다. 비닐봉지 하나를 장갑삼아 끼고 수건을 이용해
새끼고라니의 발을 잡고 풀숲으로 이동해 주었다.
머리가 띵했다. 기도를 드리고 싶은데 잘 되질 않았다.
주변의 망초꽃을 꺽어 모아 작은 기도를 드렸다.
내가 친 당신은 아니지만,
내가 칠 (수 있었던) 당신이었겠지요.
미안합니다.
차를 타고 다니는 이상 무수히 많은 생명을 짓이기고 다니는 일일텐데,,,
아직은 차로 이동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속도로 주변을 살피며 조심히 운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운한 마음이 들 수는 없지만,
다시 이 길을 오갈 수는 있는 마음이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무를 지나칠 때,
이 고라니를 생각하며 지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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