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카우]를 보고나선 만나는 주변사람마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일라치면, 스윽 끼어들어서 영화를 추천했다.
두번 얘기해도 좋고 세번 소개해도 좋고 했던 얘기 또한다고 타박을 줘도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방은 싫어할 수도 있다는 걸 잘 몰랐던 때, 재밌게 본 영화를 수다스레 추천하고 다닌 적이 있는데 , 내 추천을 신뢰한 상대방이 영화 관람 후 돌아오는 반응은 늘 최악에 가까웠다.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걸 갖고 있고, 그 세계는 너무도 오묘해서 어떤 농도로 물들어 있는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아차 싶을 때 빗껴가는게 '취향'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아 갔다.
스스로는 정말 대중취향이라고 믿은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불호 편에 선 이들의 원성을 듣고는 주변사람에게 영화를 추천하는 일을 멈칫거리기 시작했다.
추천 급발진할까 싶다가도 멈칫하며 망설이게 되어 어떤 전제를 붙이고 갖은 핑계를 생각하느라
열을내고 침을 튀기며 추천하는 재미를 잃어 갔었는데, 이 영화 [퍼스트 카우]는 좀 달랐다. 상대가 원컨 원하지 않건, 감상 후 평이 후하건 박하건 상관없이 많은 이들에게 관람을 권하고 싶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친구야, 내 세계는 이래, 이 세계 안에서 살고 싶어'라는 말을 건넬 수 있는 믿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은 아니어도 나 자신의 방향임을 일깨워준 영화.
막연했던 감각이 책을 통해 선명해질 때, 언어를 발견하고 생각이 또렷해짐을 느끼는 것과 같이 현재의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안경을 쓴 것처럼 순간 또렷하게 촛점이 맞춰졌다.
언젠가는 이 영화에 관한 감상을 적어보리라 다짐을 했지만, 좋아함이 너무나 거대해서 잘 써서 잘 전달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짓눌리게 됐다.
그런 시작은 늘 한 줄도 쓸 수 없게 만든다.
가벼워 질 시기를 기다려 보자. 있는 그대로를 전달할 수 있도록....
그렇게 미루고 미루게 된 이야기만도 오후그림자처럼 끝갈 곳을 모르고 등 뒤로 죽죽 늘어만 갔다.
떨칠 수 없는, 덜어낼 수 없는 표현의 욕망 쓰레기들...
그렇게 접어두었던 생각을 펼쳐 보이리라 맘 먹게 된건, 어제 실로 오랫만에 악몽을 꾸었기 때문이다.
귀신이나 유령이 등장하지 않는 꿈. 상황이 어긋나 어쩔 줄 모르는 당혹과 맘 깊은 곳에 있는 수치가 조금씩 조금씩 커지고 넒어져 사면 육면 팔면초가의 상태.
좋지 않은 기분으로 맞는 아침에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 초조한 걸까? 불안할 걸까? 인지하지 못한 압박감이 있었나?
좀 내 안을 들여다 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니?, 나도 모르는 나야??'
대답을 구했는데 대답에 앞서 [퍼스트 카우]의 고사리밭이 떠올랐다. 조금 느긋한 마음이 되었다.
원인을 좀더 좇았다. 그 길의 끄트머리에 이름 석 자를 발견했다. '신지예'
녹색당원이라는 이유로 숱한 추궁 아닌 추궁을 받으며 너덜너덜 해지던 때,
스스로의 노선과 진영은 있었지만, 누구도, 어느 한 사람도 싸잡아 나쁜 XX라고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복잡한 레이어를 하나로 플래튼 시켜 전달할 수 없었고, 그 복잡함을 내가 겪는 사실이 아닌 내가 취한 정보일 뿐이라는 전제와 함께 나의 견해를 말하는 수준으로만 응대하려다 보니 한 사람을 대하는 일도 힘에 부쳤다.
'비난이든 칭찬이든 가치를 드러내는 일은 신중해야 하니까, 전달할 수 있는 만큼만 적확이 전달하자.
그래도 오해는 쌓일테고 전혀 다른 필터를 통과해 다다를테니 있는 힘(마음) 다해 잘 전달하자.'라고 마음을 먹었던 것.
사실 좀 후회가 되었나 보다.
보다 적극적으로 욕하고 힐난하고 맞장구쳐주고 써글련써글련~ 타령이라도 할 걸 그랬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런 후회와 미안함과 속상함과 억울함이 꿈을 헤매고 다녔나 보다.
진이 다 빠져 깨 버렸다.
누가 그랬나? 현실이 지옥이라고? 지옥은 꿈에 있다.
드디어 시작되는 영화이야기, 혹은 내 얘기.
가끔 혹은 종종 의심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 지향은 이대로 괜찮을 걸까? 다른 방법도 괜찮지는 않을까? 지금의 확신은 언제까지 유효한 걸까?
수백번의 트라이 끝에 현재 다다란 길은 [퍼스트 카우]의 길과 닿아 있다.
빛나는 우정을 그린 영화는 많이 있지만, 이 영화에 특히 더 끌린 이유는 '세심한 살핌' 때문인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동작 하나하나가 우주를 들썩일 따뜻함을 뿜뿜하고 있었다.
앞서 본 영화 [듄]의 스파이럴의 눈부심에 눈이 멀 것 같았는데, [퍼스트 카우]의 쿠키의 손동작 하나에 스파이럴은 신라면 스프처럼 느껴졌다.
때는 서부시대. 서부와 시대 사이에 '개척'이라는 단어를 종종 꽂아 쓰곤한다. '개척'의 시대. 욕망의 시대. 무법의 시대이자 영웅의 시대. 사소한 것에 정성을 쏟고(라는 표현은 잘못쓰인 표현일런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것에 정성을 쏟는 것처럼 관객에게 보여질만큼 정성쏟는 일에 단련이 되어 있고, 가 맞는 표현이겠지... 노력하는게 아닌, 자연스런 살핌의 동작들) 소박한 행복을 위해 '그저' 믿는다.
결국, 그들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지만,
마지막 순간 삶을 팍팍하다고 돌아볼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모르겠지만,
감상자인 내겐 걷고 싶은 길이 펼쳐졌다. 욕심을 좀더 걷어내고 주변과 곁과 세계를 세심히 살피며 기꺼운 자리 한 줌일지언정 내어주는 일. 시시껄렁한 대화라도 오가면 좋은 공기로 이내 가득해지고, 그 순간을 감사하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
그럴 수 있을까?
미심쩍지만 한 걸음 내딛어 본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해를 버텼던 또하나의 힘이 되어 준 것은 포도밭출판사 뀨 샘의 글이었다.
결국, 내가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으로 산다.
어떤 증명을 하기 위한 의심의 몸부림은 '내가 맞다'라는 증거물을 제출하기 위함이 아니라
끝끝내는 내가 틀렸음을 밝혀내기 위함이라는...
앞으로 나의 큰바위얼굴이 되어 줄 쿠키(영화속 인물)!
일단은, 삶을 수놓을 조각도를 벼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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