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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멀고도 험난한, 하지만 다다라야 할 사과의 길 돌이켜 보면 비교적 가벼운 일에는 즉각적으로 버릇처럼 사과를 하곤 하지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순간에 제대로 사과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매뉴얼 없는 곤란한 상황에 닥쳤을 때 일단 그 상황을 모면하고 빠져나가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아니, 단지 그 뿐이었을까? 여전히 스스로를 괴롭히는 지난날 저질렀던 잘못을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꺼내 본다.(그렇다! 대부분의 잘못은 밝히기조차 힘들구나!) 제 때 제대로된 사과가 늘 힘들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단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게 잘못인지 몰랐던 때가 많았다. 이런 경우 되레 적반하장이 되어 나를 공격해 온다고 느낀다. 똥 뀐 놈이 성내는 것과 같은 경우. 국민학교 중간체조 시간, 줄넘..
[시내] '사과'가 생각나는 날
[시내] 마감의 리듬 하루하루를 스스로의 리듬에 맞춰 살려고 한다. 요즘 각자의 '루틴'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을 수 있다. 사소한 루틴도 있을 것이고, 하루 전반에 걸친 것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엔 가능하면 아침을 챙겨먹으며 조금은 여유롭게 아침을 시작한다. 슬금슬금 사과나무로 출근해서는 해야할 업무를 체크하고 짤막하게 처리할 수 있는 메일이나 서류 작업을 오전중에 한다. 그러곤 오로지 점심 먹기를 기다린다. 점심을 먹고나선 커피를 마시고, 핸드폰으로 게임을 조금하고 오후 업무를 시작한다. 바짝 집중하는 시간은 아마도 4-5시간. 그리고 급한일이 없으면 신속하게 퇴근한다. 집에 와서는 저녁을 챙겨먹으며 예능이나 드라마를 한편보고, 산책을 하거나 씻는다. 그 후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고 싶었던 작업을 ..
[마감] 움직이는 선 넘나들기 한시간이 남은 오늘, 제법 괜찮은 날이었다고 생각할 만한 하루였다. 딱 한가지만 빼면,,, 그 딱 한가지는 바로 지금 글의 마감. 마감에 관한 글을 써야 하는데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감은 곧잘 일을 시킨다고 해서 “마감이 일 다 했다”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이 마감은 마감이 결과물 대신 낳은 마감이다. 마감이 한 차례 미뤄진 마감. 그러니 ‘마감 역시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는 말도 맞는 듯하다. 마감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시절이 있다. 생각하면 단전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빡침으로 각인된 날들. 빛나는 청춘의 시기를 마감에다 모조리 상납하고 수명을 끌어다 써 건강한 삶과 작별을 고했던 때. 지역신문사 노동자로 일하던 때다. 당시 일했던 직장은 주간발행 지역신문을 만들던 곳. 그러니까 적어도..
[산]결국 마감을 넘겨버린 마감 이야기 장마 사이, 비가 마침 오지 않아 자전거를 끌고 동네 강변으로 나갔다. 나간 김에 안장이나 바꾸려고 자전거포에 들렀는데 주인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30분 후에나 온다고 하여 그냥 돌아왔다. 다시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보를 막아두었는지 물이 말라 수심이 얕아진 강 곳곳에 작은 섬들이 생겼다. 바닥이 드러난 강에서 사냥연습이라도 하듯 작은 새들이 모여 있다. 그 풍경에 멈췄다 달렸다 하며 반대편 강변까지 달렸다. 비가 올락 말락 하는 날씨에도 틈을 내어 산책하는 사람들 무리가 여럿 있었다. 빗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질 때마다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장마의 짧은 휴강 상태를 즐기고, 여름새는 장마 전 얕은 수심을 노리고, 자전거포 주인은 가차 없이 저녁 끼니를 챙기는. 일상의 빈틈들을..
[월간사과나무] 2021.06 vol.001 #아무얘기
[저고리가 정원이야기] 뻔한 실패를 온몸으로 겪겠다는 다짐 지난 겨울 이사온 집. 시골의 많은 집들이 비슷하겠지만 마당 있다는 점이 참 매혹적이었다. 잠에서 깨고 창을 열면 보이는 풍경들이 기분 좋아지는 낮은 언덕에 있는 마당이어서 계절마다 바뀔 정원의 모습을 상상하며 맘이 설렜다. 시골로 이사 왔다니까 열 중 여덟 아홉은 텃밭은 있냐고, 텃밭을 가꿀거냐고 물어왔다. 바지런히 살피고 가꾸어야 할 텃밭을 생각하니 도저히 감당이 되질 않었다. 아니 그보다는 농사를 지어 나오는 수확물도 물론 좋지만 그저 바라만 봐도 좋아지는 풍경을 택했달까? 철마다 바뀔 꽃들의 레이어를 생각하며 봄이 오길 기다렸다. 언 땅이 녹고... 땅을 뚫고 나온 수선화 싹을 바라보며, '곧, 수선화가 피겠지...'라는 생각으로 손을 꼽으며 하루하루를 보낸 기억이 난다. 막상 봄을 맞이하니 어떻..
생리 조퇴 2년 만에 자연발생적(?) 생리가 터졌다. 파티를 자궁이 폭포처럼 무너져내리는 이틀째..... 도대체 여성들은 이걸 어떻게 한 달에 한 번씩이나 할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주변에 폐끼치지 않고 아무 것도 부수지 않으며, 폭력을 일으키지 않고 살아낼 수 있는 것일까. 생리를 하지 않는 삶은 너무 편리해서 사실 병원에는 간헐적으로 종종, 기분이 내킬 때만 갔다. 산부인과에 가서 '생리를 하지 않아서요' 라고 말하면 피나 소변을 검사하고, 굴욕의자에 앉아서 질을 여기저기 보고, 초음파로 자궁과 나팔관들을 살핀다. 어떤 의사는 생리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혼을 내기도 하고, 이렇게 30년을 살아왔는데 생리를 자주 안하는 것은 괜찮다고 말하는 의사도 있다. 어쨌든 내 몸은 오래 전부터 정상적..
강남에 가고픈 참새 작업실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애옹애옹 소리가 들려 온다. 잘못 들었나? 창을 열었다. 애타게 무언가를 찾는 고양이 소리다. 애들(녹색+노동)이 다 있는지 후다닥 살펴 보니 노동이가 없다. 걱정이 되어 쓰레빠 바람으로 후다닥 나가서 집 뒤켠 소리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소란이 있었나 보다. 바닥엔 깃털이 널부러져 있었고, 노동이는 비탈끝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중이다.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져서는 덩굴에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살포시 안고 내려오는데 집안 창틀에 앉아 녹색이가 계속 노동이와 같은 소리를 낸다. 둘이 계속 어떤 사인을 주고 받는 것 같았다. '무사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며 집안에 들이고는 뒤란 쪽 가는길에 널부러진 깃털이 생각났다. 혹시나 노동이가 새와 ..
식물 유전자 식물 유전자 소산 식물을 좋아하게 되는 유전자가 있다면, 아마 난 유전적으로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충남 공주와 경남 함양에서 자란 엄마와 아부지는 또래들이 고향 촌구석에서 학교를 다닐 때, 어릴 적부터 도시를 떠돌며 일을 해야 했다. 두 촌사람은 서울 노량진에 한 고시원에서 만나 산동네에 살림을 꾸렸다. 언제나 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는 없었다. 다만 자식만큼은 자신이 자라온 고향을,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학교도 들어가기도 전, 아버지는 늘 새벽같이 나와 남동생을 깨워 동네 언덕 넘어있는 중앙대학교 근처 솔잎을 3개씩 따오라는 말도 안되는 주문을 해왔다. 질질 울면서 일어난 나는 거의 까무라치는 남동생을 부축여 밖으로 나갔다. 어느 날은 정말로 중앙대학교 근처까지 넘어..
사과나무 리소프린팅 워크숍 사과나무 리소프린팅 워크숍 시내 사과나무에 리소프린터가 왜 생겼더라? 2018년, 우연한 기회로 사과나무에 출근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디자인 업무를 1년 넘게 쉬다 온 상태여서 몸과 마음이 가뿐한 신입사원이었다. 하고 싶은것도 많은 꿈나무였다. 그 중 가장 관심있던 것이 ‘리소 프린트’였다. 알록달록한 별색으로 그리고 왠지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인쇄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이 얘기를 언제 처음했더라? 아무튼 명재쌤하고 리소 프린트에 대해 얘기했었다. 그러자 명재쌤이 그렇담, 열심히 돈을 벌어서 리소 프린터를 아예 사버리자! 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럼 좋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한참 뒤에 일 일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1년? 하지만 명재쌤은 봄에 열심히 일해서, 여름에 리소 프린터를 알아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