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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18] 스트릿그랜드파이터 1. 며칠 전 허리를 삐끗했다. 테라스를 쓸다가 마당비를 잡고 그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힘을 준 것도, 허리를 세차게 돌린 것도 아닌데 갑자기 푹 내려 앉는데 순간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정은 어떻게 하지? 많은 스케쥴과 약속은 어떻게 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단 사실에 좀 당황스러웠다. 따지고 보면 하루하루 중요하지 않은 날이 없는데 괜한 욕심에, 핑계대기 싫은 마음에, 미루면 돌아올 파장에 몸을 돌보기보다 좀 무리하는 편을 택했다.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드물다. 사소한 습관들이 쌓여 조금씩 어긋나 결국 벌어진 일은 수많은 전조로 신호를 주었지만 무시해서 나타난 결과라는 걸 안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회복은 어렵고 습관은 더더욱 고치기 힘들어 전보다 빠른 주기로 몸의 이상 징후가 나타나리..
2021년 딱 하나의 영화, [퍼스트 카우] [퍼스트 카우]를 보고나선 만나는 주변사람마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일라치면, 스윽 끼어들어서 영화를 추천했다. 두번 얘기해도 좋고 세번 소개해도 좋고 했던 얘기 또한다고 타박을 줘도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방은 싫어할 수도 있다는 걸 잘 몰랐던 때, 재밌게 본 영화를 수다스레 추천하고 다닌 적이 있는데 , 내 추천을 신뢰한 상대방이 영화 관람 후 돌아오는 반응은 늘 최악에 가까웠다.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걸 갖고 있고, 그 세계는 너무도 오묘해서 어떤 농도로 물들어 있는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아차 싶을 때 빗껴가는게 '취향'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아 갔다. 스스로는 정말 대중취향이라고 믿은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불호 편에 선 이들의 원성을 듣고는 주변사람에게 영화를 추천하..
창립총회공고문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해야만 하는 일의 앞에서 친구와 점심약속을 가는 길, 조금 일찍 출발해서 천변 길로 들어섰다. 여름내 꽃길이었던 그 길이 갈대숲으로 바뀌고 오후햇살에 반짝 오리가 둥둥 떠다닌다. 그래, 조금만 더 가면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 곳, 그곳의 느티나무는 얼마나 물이 들었을까? 은행나무는 제법 노란빛을 띠고 있겠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그 길의 한 가운데에서 너무 어린 고라니의 로드킬을 목격했다. 이차선도 아니고 차 한대 겨우 지난만한 도로폭의 천변길에서 아무런 준비없이 나타난 로드킬에 당혹감이 들었다. 큰도로를 지나다가 심심찮게 만나는 로드킬을 볼 때도 움찔움찔 했지만 차를 세울 수는 없어 지나치거나 피하거나하며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막다른 길처럼 느껴지는 이곳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발견한 곳..
종교는 없지만 말입니다요 종교는 없지만, 종교건물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경건해야 할 것 같고, 숙연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마저 기분 좋은 은근하게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는 차분한 기분이 되는 과정이 즐거우니까. (어린 시절 장롱 속에 들어가 두꺼운 이불 사이에 눕곤 했는데 무거운 이불이 짓누르는 느낌이 제법 좋아 그안에서 잠들 때가 종종 있었다. 마치 그런 느낌??) 방방 뛰는 마음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흔들 하다보면 금세 풀이 죽는데, 평소엔 우울감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더 큰 편이지만, 왠지 우울할 정도로 차분한 마음을 찾고 싶을 때, 하늘까지 올라갈 것처럼 붕 뜬 마음이 불안한 고도까지 올라 갈 때 쯤 불현듯 종교건물-교회, 성당, 절-이 그리워진다. 딱히 맘이 삐죽했던 건 아닌데 아산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 김에 돌아오는 길..
무너진다는 것 간밤에 내린 비로 하루 사이에 풍경이 완전 달라졌다. 어제 본 풍경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불어난 하천의 물, 무성하던 풀들은 모두 누웠고 밥 아저씨의 그림처럼 순식간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무서운 자연, 아니 어리석은 인간. 촌구석으로 이사온 후 집에서 고양이랑 보내는 시간도 좋지만, 바로 집 옆 작은 언덕과 오솔길 따라 갈 수 있는 작은 동산이 지척에 있어 좋았다. 작업실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주변이 묘한 분위기에 휩싸일 떄가 있다. 미묘한 광선의 차이로 오는 표현하기 힘든 시각의 차이를 감지하곤 하는데 뭐랄까 어스름의 빛깔이 서서히 주변을 파고 드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마우스를 내팽개 치고 후다닥 집을 나서서 언덕을 올라 밭 사잇길로 달음질 친다. 아니나 다를까 서쪽하는 뿐 아니라 360도 ..
지각에 대한 변명 집에서 회사까지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르면 딱 한시간. 처음엔 그 길 따라 출퇴근을 하면서도 마냥 좋았다.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가 아닌 저수지 두 곳을 지나고 옆으론 논도 많아 시야가 확 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간 중간 큰 도로를 타고 갈 때마다 좀더 좁은 도로, 천변길을 따라가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 오는 차량이 있으면 피하기 곤란한 단점도 있지만, 대부분 오가는 차량이 없어 한적하고 양옆으로 풀들이 자라고 있어 계절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천변의 여러 생명체들을 볼수 있어 좋았다. 무심코 저지른 일탈이 이제 정코스가 되어 출퇴근 시간이 5분, 10분 차츰 차츰 늦춰졌다. '10분 정도 늦게 가면 어때?, 좀더 일찍 출발하면 되지 뭐' 라고 생각했던 코스가 비가 오고 하천에 물이 제법 흐..
나무야 나무야 예산엔 어마어마하게 넓은 면적의 예당저수지가 있어서 예산의 저수지 하면 곧잘 예당저수지를 떠올리지만, 농촌지역 답게 지역 곳곳에 작은 저수지들이 참 많다. 바다 근처에 사는 친구는 갇힌 작은 물이 답답하다며 별 흥미를 못 느낀다고 했지만, 사실 개인 취향은 산 속에 있는 연못 정도의 비교적 작은 물웅덩이를 좋아 한다. 저수지 주변길이 포장이 되어 있지 않으면 더 좋고, 그 길이 저수지를 빙둘러 한바퀴 산책할 수 있는 길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하겠다. 주변 저수지를 소개 받기도 하고 탐험도 하면서 몇 군데 맘에 드는 곳을 발견했는데, 그 중하나가 대술면 시산리에 있는 시산지. 가끔 낚시 하는 분들이 있지만, 가는 길이 좁은 편이어서 인적이 드물어 호젓하니 분위기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한켠은 산자락이어서 ..
[인디] 멀고도 험난한, 하지만 다다라야 할 사과의 길 돌이켜 보면 비교적 가벼운 일에는 즉각적으로 버릇처럼 사과를 하곤 하지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순간에 제대로 사과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매뉴얼 없는 곤란한 상황에 닥쳤을 때 일단 그 상황을 모면하고 빠져나가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아니, 단지 그 뿐이었을까? 여전히 스스로를 괴롭히는 지난날 저질렀던 잘못을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꺼내 본다.(그렇다! 대부분의 잘못은 밝히기조차 힘들구나!) 제 때 제대로된 사과가 늘 힘들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단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게 잘못인지 몰랐던 때가 많았다. 이런 경우 되레 적반하장이 되어 나를 공격해 온다고 느낀다. 똥 뀐 놈이 성내는 것과 같은 경우. 국민학교 중간체조 시간, 줄넘..
[시내] '사과'가 생각나는 날
[시내] 마감의 리듬 하루하루를 스스로의 리듬에 맞춰 살려고 한다. 요즘 각자의 '루틴'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을 수 있다. 사소한 루틴도 있을 것이고, 하루 전반에 걸친 것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엔 가능하면 아침을 챙겨먹으며 조금은 여유롭게 아침을 시작한다. 슬금슬금 사과나무로 출근해서는 해야할 업무를 체크하고 짤막하게 처리할 수 있는 메일이나 서류 작업을 오전중에 한다. 그러곤 오로지 점심 먹기를 기다린다. 점심을 먹고나선 커피를 마시고, 핸드폰으로 게임을 조금하고 오후 업무를 시작한다. 바짝 집중하는 시간은 아마도 4-5시간. 그리고 급한일이 없으면 신속하게 퇴근한다. 집에 와서는 저녁을 챙겨먹으며 예능이나 드라마를 한편보고, 산책을 하거나 씻는다. 그 후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고 싶었던 작업을 ..
[마감] 움직이는 선 넘나들기 한시간이 남은 오늘, 제법 괜찮은 날이었다고 생각할 만한 하루였다. 딱 한가지만 빼면,,, 그 딱 한가지는 바로 지금 글의 마감. 마감에 관한 글을 써야 하는데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감은 곧잘 일을 시킨다고 해서 “마감이 일 다 했다”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이 마감은 마감이 결과물 대신 낳은 마감이다. 마감이 한 차례 미뤄진 마감. 그러니 ‘마감 역시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는 말도 맞는 듯하다. 마감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시절이 있다. 생각하면 단전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빡침으로 각인된 날들. 빛나는 청춘의 시기를 마감에다 모조리 상납하고 수명을 끌어다 써 건강한 삶과 작별을 고했던 때. 지역신문사 노동자로 일하던 때다. 당시 일했던 직장은 주간발행 지역신문을 만들던 곳. 그러니까 적어도..